외로이스무삶
by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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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겨울의 연습장





 어린시절의 머리속은 모자이크 같았다. 책을 많이 읽은 척 했지만 실은 인터넷을 좀 빨리 배웠을 뿐이었고, 주관없이 무조건 반대만을 외치면 쿨해보일 줄 알던 중학생이었다. 9.11 테러를 묻는 사회 선생님에게 "미 제국주의가 응징당한 것입니다." 라고 발표하며 어깨를 으쓱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를테면, 이것은 어떤, 배신감에 가까웠다. 우상에 대한 배신. 어른들에 대한 배신. 그리고 한없이 정의로울거라 믿었던 사회가 모순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의 치기.

 초등학교때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나는 항상 링컨과 박정희를 써냈다. 링컨은 대통령인데 노예를 해방시켜서 였고, 박정희는 대통령인데 우리나라를 북한보다 강하게 만들었기 떄문이었다. 사실 뒤의 이유는 '찾아서' 쓴것 뿐이고, 진짜 이유는 두명이 내가 이름을 아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5학년때 쯤이었다. 존경하는 인물 그리기에서 나는 군모를 쓰고 군복을 입은 박정희를 그렸다. 손에는 기다란 짝대기도 하나 그려주었다. 나는 다른애들은 이름조차 모를 위인을 그린것에 스스로를 훌륭해 하면서 칭찬을 기다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너무 '최근'의 인물이라며 다시 그려오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선생님 표정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머릿속이 모자이크 같았다는 건 결국 내 배신감이 그 또래가 가질법한 사회에 대한 시니컬함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내가 스스로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16년 동안 쌓아온 세계가 한번에 뒤집히는 경험을 한것은 도서관에서 읽은 한권의 책으로부터였다. 나름의 사료와 지명들로부터 대륙에 존재했던 조선을 설명하던 그책을 읽으며, 나는 세계가 부서지는 두려움과 쾌감을 느꼈다. 그 논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깨닫는데는 몇달 걸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세계를 그런식으로 의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의 뇌를 강타하고 뒤흔들어 놓았다. 그 후 나는 역사책을 자주 읽었는데, 한권 한권 읽을때 마다 내 사관은 최근의 책을 기준삼아 갱신되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손가락으로 세기 힘들정도의 책을 읽고 새 책을 읽을 때, 문득 '이건 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최종 업데이트된 남의 의견을 자신의 의견으로 삼던 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무렵, 나는 전태일 평전을 읽었고, 치기어린 시니컬함에서가 아닌, 진짜 배신감에 몸을 떨며 울었다. 그리고 몇년뒤, 나는 철학과 지망생이 되었다.
by 클  | 2009/02/18 03:15 | #낙서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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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랑쁘 at 2009/02/18 17:11
한장의 역사로군요. 철학과 라니, 어릴적 부터 철학 서적을 참 좋아 했지요. 공ㅂ주가 많이 모자라서 안타깝기도 하고, 기회만 된다면 철학의 석학 들에게 강의를 들으러 돌아다니는것이기도 합니다. 정말로..그래서 클님이 부럽기만 합니다. 누구나, 저 나름대로 취향이 있어서 그를 따라 핸동 하는것이라 본다면, 클님이 선택한 삶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결과일것이라 추정 합니다..ㅎ
Commented by 클  at 2009/02/24 20:07
그래도 아직 스스로의 치기에 부끄러워요ㅋㅋ 스스로에게 안부끄러워지기 위해서 더 공부하고 더 생각할거에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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